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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교

필리핀 양한갑선교사 선교편지85호

유대식2014.05.12 19:57조회 수 367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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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 선교통신 85호

양한갑 최영인 선교사

하카(Hakha) 선교 보고


파람(Falam)까지 가는 길

목회자 자녀 수련회를 마치고 점심 식사 후에 곧바로 파람(Falam)을 향해서 출발을 했습니다. 

파람에서 있을 저녁 집회를 위해서 서둘러야만 했습니다. 

칼라이미오를 벗어나 Chin 주 경계선에 이르렀을 때 또 한번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전에 검문을 했던 군인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군인들뿐만 아니라 검문소 자체가 철거되고 없었습니다. 

칼라이미오 공항에서 까다로운 심사가 사라지더니, 친(Chin State) 검문소까지 사라졌던 것입니다. 

아담은 이제는 외국인들이 원하면 Chin State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방문만 허락할 뿐, 외국인의 거주는 여전히 허락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미얀마의 변화가 Chin까지 이미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번 파람(Falam)과 하카(Hakha) 선교에는 아담목사, 피터목사 그리고 투몽목사가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약 1,500m 고지에서 발목이 잡혔습니다. 

도로 위로 큰 돌들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차가 제일 앞에 있어서 낙석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행했던 목사들의 머릿속에는 Falam 집회때문에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낙석이 중단된 후, 약 20분 동안을 더 기다렸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세 목사가 차에서 내려 무거운 낙석들을 산 아래로 떨어트렸습니다. 

통과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돌들이 있었지만, 운전수는 충분하다고 신호를 보내고 네 바퀴가 돌아가는 기아로 바꾸고 탱크처럼 힘차게 돌진했습니다. 

통과!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번 목회자와 장로 세미나를 개최했던 바룽(Valung)에 도착해서 반가운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떨어지기 전에 파람에 도착을 하기 위해서 서둘러 바룽을 떠났습니다. 

약 2시간을 달린 후, 한 높은 언덕에 차를 세웠습니다. 

운전수가 약 10분간 휴식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아담목사가 건너편 산 정상을 가리키며, “저 산 너머 정상에 하얀 탑이 하나 있습니다. 보이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담은 “저기가 바로 Falam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손을 내밀면 곧 잡힐 듯 가깝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저기까지 2시간이 걸릴지, 3시간이 걸릴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아리송한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 아담은 나를 언덕 끝으로 데리고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게 했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말 그대로 수천 킬로가 되어 보이는 90도 절벽이었습니다. 

절벽 아래에는 실처럼 보이는 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 강 위로 다리가 있었습니다. 

아담의 설명이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 저희가 서 있는 이 언덕은 해발 2,000m이고, 저 건너편 파람은 해발 2,300m 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기서부터 2,000m를 내려갔다가 저 다리를 건너서 다시 2,300m까지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운전수는 최단 저속 기어로 바꾸고 가파른 절벽 길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차의 실수라도 하면 말 그대로 수 백 미터가 아니라 수 천 미터 절벽 아래 강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사히 강까지 내려갔습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물이 저장된 곳으로 곧장 가서 차바퀴에 물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브레이크 페드에서 지글지글 타는 냄새와 연기가 솟아올랐습니다. 

오토바이들도 엔진과 브레이크에 물을 뿌려서 식히고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길이었습니다.


다시 파람을 향해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길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앞서 떠났던 트럭들이 헉헉 거리며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추월해서 올라가는 우리 차가 대단하다는 생각보다, 

파람에 도착할 때까지 저 무거운 트럭들이 절벽 길에서 절대로 서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하는 걱정 때문에 고개가 계속 뒤로 향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건너편 산 언덕 위에 도착했습니다. 

파람이었습니다. 정말 휘파람이 절로 나왔습니다.


서둘러 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이름이 호텔이지 삐걱거리는 나무 침대 하나, 삐딱한 의자 하나. 그리고 구석에 몽당 초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일단 저녁 식사부터 해결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문을 마치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천둥 번개까지 동반한 폭우였습니다. 

무거운 구름까지 파람을 단숨에 삼키고 말았습니다. 

양철 지붕 위로 떨어지는 엄청난 빗방울 소리는 옆 사람과의 대화까지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강한 바람과 폭우는 좀처럼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파람에서의 집회는 취소되었습니다.


작은 손전등 아래에서 저녁을 마치고 나니 아담목사에게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왔습니다. 

신기하게 그 폭우 속에서도 전화가 터졌습니다. 

파람에 있는 Chin 신학대학에서 우리를 만나보고 싶다는 소식이었습니다. 

Chin 신학대학은 Chin State에서 1953년도에 제일 먼저 세워진 가장 오래된 신학대학이었습니다. 

학장을 비롯해서 많은 교수들이 우리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친 선교와 미얀마 선교를 향한 신학대학과 교수들의 비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얀마의 미래를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훌륭한 영적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하카(Hakha)를 향하여

새벽 5시에 하카를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했습니다. 

파람에서 하카까지 가는 길은 심하게 오르내리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산 허리를 돌아서면 달팽이처럼 다시 360도로 휙 돌아야만 하는 어지러운 길이었습니다. 

구토가 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100년 전 이런 길을 걸었을 초대 선교사님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험한 산길을 걸어서 산행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침대도 없이 흙바닥에서 잤을 터인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빵과 버터도 없이 살았을 터인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파란 눈을 가진 귀신이라고 도망쳤던 사람들을 붙잡아 결국 예수를 믿도록 하기 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깊은 산 중에서 눈을 감았을 터인데 그리운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초대 선교사들의 깊은 고통과 희생 그리고 Chin 부족을 위한 그들의 헌신과 죽음을 생각하니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었고, 고개도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카(Hakha)에 도착

한 산 허리를 돌아서자, 갑자기 거대하고 웅장한 장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카(Hakha)였습니다. 

거리가 멀어서 하카 전체를 다 잡아서 한 눈에 쏙 넣을 수는 있었지만, 하카를 가슴으로는 품을 수는 없었습니다. 

너무 벅차서, 너무 감격스러워서.... 

카메라 렌즈에 하카의 모습을 여러 장 담았지만, 

가슴에 들어와 있는 그 감동의 하카는 사진 속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카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크고 높은 산(계21:10) 아래에 있는 거룩한 성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카는 3,000m 룽산(Mt. Rung) 허리에 찬란한 보석으로 머리를 곱게 단장하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어린 양의 신부였습니다.


Chin State 첫 번째 선교사 Arthur Carson

친(Chin)의 영적 아버지 아셔 칼슨(Arthur Carson)은 부인 Laura와 함께 

1899년 3월 16일에 미국 침례교회 소속 선교사로 하카에 도착했습니다. 

1908년 4월 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하카를 중심으로 10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복음을 전했지만

Carson 선교사는 수많은 Chin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남편을 먼저 천국으로 보낸 Laura Carson은 병이 들어 1920년 미국으로 후송될 때까지 하카 선교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하카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Carson선교사의 무덤을 방문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카에서 목회하고 있는 제임스(James) 목사가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Carson선교사의 무덤은 큰 열쇠들로 잠겨 있었습니다. 

제임스목사가 열쇠들을 받아서 열었습니다. 

저에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Chin의 첫번째 선교사는 Arthur Carson이고, Chin의 마지막 선교사는 Robert Johnson입니다. 

Johnson 선교사를 마지막 선교사로 명명하는 이유는 1963년 미얀마 군부가 나라를 잡으면서,

 Chin 크리스천들을 말살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Chin 선교사들을 추방시켰습니다. 

그 마지막 선교사가 Johnson이었고, 1963년 이후 지금까지 미얀마 정부는 단 한 명의 선교사도 Chin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Carson 후손들이 하카에 있는 Carson 선교사의 무덤을 방문하고 싶다고 수십 차례 청원서를 제출했지만 단 한 번도 허락을 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거운 자물쇠를 열고 Carson 선교사의 무덤 안으로 들어가게 된 일은 저에게는 너무도 감격적인 영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Carson선교사의 무덤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안으로부터 웅장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가 갈수록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습니다. 기도 소리였습니다. 

James목사가 말했습니다. “매주 금요일에는 하카에 있는 여인들이 Carson선교사 무덤에 와서 하루 종일 금식하면서 기도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James목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습니다. 

두 여인은 그 무덤 안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기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카메라를 뒤로 감추고 있었지만, 

경건한 부인들의 기도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 무례함을 무릅쓰고 카메라 샷터를 눌렀습니다. 

그 소리에 두 분은 서서히 기도를 줄이면서 멈췄습니다. 너무 죄송했었습니다. 


James 목사가 저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소녀처럼 수줍은 미소로 하카 방문을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무례한 질문이었지만 용기를 내서 “매주 금요일에 Carson 선교사님의 무덤에 와서 금식하며 하루 종일 기도를 한다고 들었는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한 분이 대답했습니다. 

“Chin State는 크리스천 주(州)입니다. 그런데 미얀마 군부는 국민 투표를 통해서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하지만, 

주지사는 투표가 아니라 대통령이 지명해서 내려 보냅니다. 

97%가 크리스천인 Chin 주(州)의 주지사는 반드시 크리스천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현 주지사는 불교신자입니다. 특별히 그는 Chin에 불교 사원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이 주지사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자신들 혹은 자녀들의 축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여인들 가운데 가장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Carson 선교사의 무덤에서 결코 멈추지 않는 하카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Carson선교사의 무덤은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5평 정도 되는 작은 내실에는 Carson선교사와 후임 선교사들의 무덤 

그리고 첫 번째 개종자이며 후에 목사가 된 Sang Ling목사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들의 무덤 외벽으로는 한 사람씩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는 작은 기도실들이 무덤을 향해서 있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더 많은 성도들이 와서 기도를 한다고 했습니다.


Carson선교사 그곳에 묻힌 지 100년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내 자신에게 했습니다. 과연 내가 죽은 후에, 

내 무덤에 와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100년 동안 기도해 줄 성도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Carson 선교사의 생애가 얼마나 보배롭게 존귀했던가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하나님께서 100년 동안 지켜주시고 계시는 그 기도터를 결코 무너트릴 수가 없었습니다. 

Chin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 자신들이 여리고 성처럼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소리를 Carson선교사의 무덤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카 목회자들과 함께

신실한 하카 목회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축복이었습니다. 

높은 산, 하늘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분명 달랐습니다. 

순수함이 있었고, 복음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습니다. 

약 한 시간 동안 만남을 가질 수 있었는데, 부흥회 부탁과 신학대학 특강 인도를 부탁해 왔습니다. 

당장 날짜를 잡아달라고 할 정도로 은혜를 사모했습니다. 

하카를 뒤로하고 떠나야만 하는 발걸음이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하카의 인구는 약 10.000명이라고 했습니다. 

복음화률은 거의 99%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카에 있는 교회 수는 교단을 초월해서 모두 25개라고 했습니다. 

믿기 힘든 숫자였습니다. 

내가 놀랬던 이유는 10,000명의 크리스천을 위한 교회가 단 25개 교회 밖에 없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카의 선교 역사는 올해로 115년이 되었습니다. 

런데 지난 115년 기독교 선교 역사 속에 교회가 25개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은 전도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동안 교회의 분열이 없다는 증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놀랬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날마다 싸우고 뻑뻑 쪼개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넘치고 있습니다. 

만약 하카교회가 그런 한국교회를 닮았다면 10,000명의 크리스천이 있는 하카에는 지금쯤 수백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25개 하카 교회들은 어린 양의 신부들처럼 순결하고 고고했습니다. 

그 거룩한 땅을 밟을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에게는 커다란 축복이었고 영광이었습니다.


하카를 떠나며....

그 동안 많은 곳을 여행해 보았습니다. 

그 여정들 가운데 하카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잘 살아보겠다고 피터지게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거룩한 성산을 지키기 위해서 하늘을 붙잡고 있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언덕이었습니다. 

지금도 선교사의 무덤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하는 하카 성도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선교사의 역할

지금 미얀마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칼라이미오 이민국은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Chin 주의 경계 검문소 역시 이미 철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Chin 언덕을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카로 가는 길목에는 험난한 요단강이 있지만 그 강을 건너면 거룩한 성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Johnson 선교사 이후, 5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하카로 가는 길에 시온의 대로가 열리고 있습니다.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바벨론 강가에서 노래했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하카에도 그 봄이 올 것입니다. 그

리고 많은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하카로 다시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내 걱정은 이것입니다. 그 어떤 선교사든 하카에 새 교회를 세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열심히 섬기고 있는 목사들을 찢어 내어 건너편에 교회 건물을 짓고 한국 선교사가 들어와서 또 하나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카에서는 그런 선교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하카를 향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겠지만, 

다시 하카에 들어가게 되면 분열을 통해서 교회 개척이 아니라, 더 순결하고, 더 강한 하카의 교회와 성도들이 되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길목에서

하카를 떠난 것은 오후 1시였습니다. 

석양이 떨어지고, Chin의 골짜기들은 깊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별들이 하나 둘 솔솔 내려오고, 초생 달은 오늘따라 붉은 색을 띄고 있었습니다. 


이번 선교 여행에서 가장 염려가 되었던 것은 운전을 하는 기사의 운전 실력이었습니다. 

나이가 좀 든 사람이었는데, 서툴러서 몇 번이고 내 심장을 얼어붙게 했습니다. 

하카로 가는 길에는 방어보호벽이 없습니다. 

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가다가 앞에서 다른 차와 마주치면 둘 중 하나는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도로 옆은 수 백 미터 절벽입니다. 뒤로 운전을 하거나 절벽 가까이로 차를 붙일 때 몇 번이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런데 하행 길, 저녁 8시경, 

아직도 칼라이미오는 아득히 먼데, 한 모퉁이 길을 돌아서는 순간 오토바이 한 대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오토바이는 오토바이대로 우리를 피하기 위해서 산 쪽으로 방향을 급히 틀었고, 

우리 운전수 역시 그 오토바이를 피하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절벽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차는 반 바퀴 돌면서 절벽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습니다. 

우리 운전수는 순간적으로 문을 열고 나가더니 오토바이 운전수를 당장이라도 잡아 죽일 듯이 화를 냈습니다. 

이성을 잃은 모습이었습니다. 


차를 안전지대로 빼지 않고 혼자 문을 열고 나가서 그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운전석 옆에 앉아 있었던 나는 절벽 끝에 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캄캄한 밤에 수백 미터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누가 우리를 구조해 주겠는가 하는 생각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담이 운전수에게 소리를 치면서 빨리 차를 도로 안쪽으로 빼라고 했습니다. 

그때서야 운전수는 정신을 차리고 차를 절벽으로부터 빼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몸은 떨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때까지도 하카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절벽에서 내 생애가 끝나고, 내게 주신 선교가 여기에서 끝난다 할지라도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하카는 그런 행복을 내게 주었고, 그래서 하카는 이미 내 마음 속에 큰 성산이 되어 있었습니다.


칼라이미오에는 살아서 저녁 10시 넘어서 도착을 했습니다. 

몸은 무겁고 지쳐있었지만, 하카의 행복 때문에 그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거룩한 성, 하카를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와 후원을 보내주셨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카가 열렸습니다. 하카를 위해서 기억해 주십시오. 




Rev. Joshua Hankap Yang

아시아 나사랑 선교회
Asia Leprosy Mission
www.LoveALM.com
Philippine Mobile: (63) 939-903-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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