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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한인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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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 칼럼

바다가 잔잔해지지 않을 때(세월호 1주기에)

김진식2015.04.16 20:56조회 수 362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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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잔잔해지지 않을 (세월호 1주기에)                      

20150415 수요예배에서


누구나가 거친 풍랑 앞에서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4: 35-41 말씀입니다.


35.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말씀은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권능의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여 줍니다.


참으로 든든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누구나가 풍랑 앞에 서면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할 겁니다.


"주여, 풍랑을 잔잔케 하여 주소서."

"주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 "나같은 죄인 살리신 은혜 놀라워" 바로 거친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노예상이었으면서 후에 목사가 뉴톤이 고백한 찬송시입니다. 그야말로 뉴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역시 대학시절 수학여행차 한려수도인가를 배를 타고 갔다가 풍랑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배가 파도로 인해 좌우로 곤두박질 , 두려움과 그리고 마가복음 4장의 말씀을 의지하며 기도했던 때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보면, 저도 은혜를 입은 확실합니다.

저는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엔 풍랑 앞에서 부서지고, 마침내 속에 가라앉은 배도 없이 많습니다.

물론 속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하게 기도하던 그리스도인들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사실 기도해도 바다가 잔잔해 지지 않을 때가 많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거센 풍랑을 원망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간절한 기도 앞에서도 바다가 잔잔해 지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삼켜버렸을 ,

우리는, 교회는 어찌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 마음 속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분이지 실제로 바다의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분은  아니라고, 성경을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필요가 있다고 에둘러 변명할까요?


아니면,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


아니면, 기도가 약하거나 간절한 탓이라 말할까요?


이도 저도 아니면, 요나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죄인이 있었는데,


죄인이 끝내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멈추지 않은 결과라고,


하나님을 마치 무슨 먼스터인냥 말할까요?


 

분명 이건 아니지요.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 지지 않을 , 


그래서 물속에 빠져가는 자와, 빠져가는 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밖에 없는 


고통과 슬픔 앞에서 우리는, 교회는 어찌해야 할까요?


 

먼저 교회는 겸손해야 합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선하심을 믿습니다.

그렇다고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 괴로워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변론하고자

목청을 높힐 필요도 없습니다.


 또 누군가의 허물과 죄의 문제로 몰아가는 일은 더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욥기 42 7절에서 하나님은 굳이 하나님을 변론하려던 욥의 친구들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원망과  원통함을 토로했던 욥의 손을 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의 뜻도 계획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 없는 것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언제든 교회는 겸손한 것이 좋습니다.


 

다음으로 교회가 있는 일은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일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즐거워 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바다가 잔잔해 지지 않아 물속에 잠겨간 영혼들과, 이로 인해 슬픔에 잠겨 버린 이들과 함께 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란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죄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우리, 교회가 있는 일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옆에서 울음 소리를 들어주고 옆에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힘써 필요를 채워 주고,


그리고 함께 일어나 소리쳐 주는 것입니다.


외롭지 않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그래야 교회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복음으로 땅에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세월호 1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물속에서 단원고등하고 2학년 3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묵고 있던 방에 둘러 앉아서 마지막으로 기도했습니다. 영상으로도 남아 있고, 빛나라가 기도합니다.

아마도 배가 기울고 물이 차들어 이들의 기도는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훨씬 간절했을 겁니다.


그러나 물은 차올랐고, 배는 마침내 차디찬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던 아이들에게 뭐라 말이 없습니다.

팽목항에서 통곡하며 기도하던 부모들에게 정말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않네요!" 해도  말이 없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눈물의 가족들을 혼자 울게 했으니 더더욱 말이 없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가 있는 일로 돌아가는 말고는.


다시 세월호입니다.


"아직도?"가 아니라 "이제야 제대로" 입니다.



다시 한번 고통 가운데 있는 세월로 유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능력의 예수를 믿으라는 설교만으로는 안됩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자를 찾아와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처럼,


오늘 고통과 아픔 가운데 울고 있는 이들을 찾아가야합니다.


우는 이들과 함께, 같이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향한 유가족들의 행진에 함께 서야 합니다.

왜내하면, 사랑에는 거짓이 없고 악을 미워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 9, 고전 1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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