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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리고 싶은 세월

minari2013.06.22 19:19조회 수 617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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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되돌리고 싶은 세월

"가난에도 쌀 두 가마 헌금 낸 아버지 집안 분란 일어 신앙 떠나게 된 후
知天命 연세에 덜컥 불치병 얻어 빚 덩어리 차 끌고 병원 모셔드려
‘아들 차’ 자랑하면 울음 삼키던 나 한 번이라도 소풍길 함께했더라면…"

백두현 / 박달재LPC 관리이사
 백두현 / 박달재LPC 관리이사
그날 따라 이상하게도 조용한 성격인 아버지가 계속 고함을 지르시더니 어디론가 나가버리셨다. 어머니는 마당 한 귀퉁이에서 복받치는 서러움을 억누르며 방에서 꺼내온 책들을 몽땅 태우고 계셨다. 바로 전날까지 아버지가 그토록 애지중지하시던 성경책들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생활고로 많이 배우지 못하셨다. 그래서 친구들이 학교로 가는 시간에 교회로 가셨다. 그곳에서 음악 공부가 하고 싶으면 풍금을 익혔고, 국어 공부가 그리울 땐 성경을 읽으며 성장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가난하더라도 믿음직스럽다고 하시던 어머니가 성경책을 태우고 계신 것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아버지가 쌀 두 가마를 교회 건축 헌금으로 내면서 집안에 분란이 일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쌀밥은커녕 꽁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우리 집 형편에 쌀 두 가마는 엄청난 재물이었다. 명절날조차 쌀밥을 구경하지 못했으니 집 곳간에 쌀 두 가마가 있을 리 만무했지만 아버지는 빚을 내어 헌금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달이 일어났다. 지독한 가난이 아버지께 가정과 신앙 중 하나만 선택하기를 강요한 것이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 손에는 성경책 대신 삽과 괭이가 들려있었고 가정의 평화를 되찾은 듯했다. 그러나 가끔 만취해서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특히 성탄절 새벽마다 교회 신도들이 우리 집 대문 앞에 와서 캐럴을 불러주던 날은 집안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버지는 조용히 대문 앞까지 나가 문도 열지 않고 노래를 듣고 들어오셨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모른 체하셨다. 나 역시 양말을 걸어놓고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릴 나이였지만 자는 척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치만 보았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간신히 자리 잡았던 우리 집의 평화가 덜컥 깨져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아버지가 겨우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불치병을 얻으신 것이었다. 의사는 냉정하게 시한부 생명을 선언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갓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나로서는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몇날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고민 끝에 아버지께 다시 교회에 나가실 것을 권했다.

"아버지! 다시 교회에 나가시는 게 어때요?" "왜? 내 병은 못 고치는 거냐?" "아니요, 아버지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하셨으면 해서요." "싫다! 이제 와서 무슨 낯으로…." 나는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헌금을 많이 해야만 교회에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강퍅하신 성격 탓에 신앙을 접으셨다고 믿고 그렇게 권했지만 끝내 외면하셨다.

신앙의 힘으로 아버지가 다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물질적으로라도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고민 끝에 아버지가 치료받는 곳을 도시의 큰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할부로 자동차를 샀다. 당시 내 월급이 46만원이었는데 차값을 21만원씩 20개월 동안 갚기로 했다. 아버지께는 회사에서 차가 나왔다고 말했다. 자가용을 타고 고향 집을 찾는 사람들을 크게 출세했다고 부러워하시던 분이라서 조금이라도 자부심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은 생각에 술술 거짓말이 나왔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신지 치료를 받으러 갈 때 내가 당신을 태우러 차를 몰고 오길 바라는 눈치셨다. 나는 말단 사원이었지만 월차휴가를 내고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 마치 내가 자가용 기사처럼 작은 차의 뒷좌석을 최대한 넓혀 정성껏 모시고 다녔다. 아버지는 아시는 분을 볼 적마다 차를 세우게 하고 아들 회사에서 나온 차로 병원에 간다며 자랑하셨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모르게 목울대가 울렁거렸지만 이렇게라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빚 덩어리 차일망정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버지는 내 차를 겨우 세 번 타신 후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다. 그나마 한 번은 영정사진으로 타셨다. 그래서 가셨지만 보내드릴 수가 없었다. 내 차를 타신 세 번 중 한 번만이라도 항암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이 아니라 소풍이었다면 모를까, 도저히 억울해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흐르다 굳어버린 눈물 자국 위로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서 그리다 만 유화처럼 얼룩져 갔다. 그래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라서 남의 이목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혹시, 그날 어머니가 태워 버린 성경 책 탓은 아닐까, 회한의 장면들이 되풀이되었다.

어느덧 그로부터 세월은 이십 년도 더 흘러 이젠 차 없는 사람이 없다시피 한 세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세상이 달라졌다고 마음까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아버지는 아들의 차를 타고 다녔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도 아버지가 되면서 정작 자기 아버지 마음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아들 귀한 줄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면서 아버지 귀한 줄은 가르쳐줘도 몰라서 안타깝다. 이제 며칠 후면 스물한 번째 아버지 기일이다. 이번 제사에는 아버지 영정사진 앞에 성경책을 한 권 놓아드릴까 한다.

백두현 / 박달재LPC 관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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