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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교

필리핀.미얀마 양한갑선교사 선교편재 108,109호

유대식2015.09.25 09:25조회 수 275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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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 선교통신 108호

양한갑/최영인선교사

 

티센(Tisen) 선교

칼라이미오에서 바룽(Valung)까지 올라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산이 아니라 갯벌처럼 이 언덕 저 언덕이 물렁물렁 거렸다.

몇 십 군데가 아니라 수 백 군데가 처참하게 허물어져 있었다.

이미 무너진 길들보다 앞으로 무너질 길들이 더 많아 보였다.

 

첫 번째 도착지 바룽에는 오후 2시 경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오후 5시 30분에 도착했다.

티센(Tisen)에서 저녁 6시에 집회를 갖기로 했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바룽은 이미 짙은 구름 속에 갇혀 있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티센에 도착을 해야 했기에 잠깐의 휴식도 없이 티센으로 향했다.

그때 아담이 펄쩍 뛰며 당황해했다.

칼라이미오에서 구입했던 장화를 호텔에 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길이 질퍽하게 미끄러워 서로 서로 손을 잡아주며 내려갔다.

이 가파른 언덕을 무거운 짐을 지고 매일 걸어 다니고 있을 성도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걸었다.

 

그새 어둠은 티센 언덕을 통째로 삼키고 있었다.

아직도 반이 남았다고 했다.

그때 깊은 숲속에서 밝은 빛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언덕을 흔드는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티센 청년들이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서 올라왔던 것이다.

우리가 걸었던 길은 폭이 1미터도 되지 않은 작은 오솔길이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수 백 미터 낭떠러지였다.

나는 차라리 걷겠다고 했다.

그때 아담이 Chin Hill에 있는 최고의 짱들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교회에서 기다리고 있을 성도들 때문에 결국 오토바이를 탔다.

4대의 오토바이들이 독수리처럼 날아갔다.

가슴이 너무 쪼그라들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모두 티센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미 6시가 넘어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우리의 도착 시간은 1시간이 늦은 오후 7시였다.

곧바로 교회로 들어가려고 하자 티센 성도들이 내 팔을 덥석 잡더니 한 집으로 데리고 갔다.

밥부터 먹으라는 것이었다.

상 위에는 토종 닭 백숙과 삼은 큰 감자가 놓여 있었다.

먼저 예배를 드리고 먹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먹는 것이 먼저라고 우겨서 할 수 없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교회로부터 들려오는 찬송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 너무도 엄청난 말을 들었다.

티센에는 67개 가옥이 있고, 총 384명 주민이 살고 있고, 모두 크리스천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내린 엄청난 비와 산사태 때문에

정부로부터 티센을 속히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라고 했다.

 

마을은 가파른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마을 위쪽 언덕이 이미 1.5m 주저앉아 큰 비가 한 번 더 오면

엄청난 산사태로 인해 티센 마을 전체가 절벽 아래로 순식간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60년 이상 살아왔던 정든 집과 교회와 전답을 버리고 속히 떠나야만 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 예배를 드리다가, 오늘 밤에 자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티센이었다.

그런 상황인데 티센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기도와 찬양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들을 빨리 보고 싶어서 결국 수저를 내려놓고 교회로 향했다.

 

예배를 드리다가 티센 성도들과 함께 오늘 밤에 천국으로 갈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설교가 뜨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설교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예배를 마칠 때까지 티센은 흔들리지 않았다.

 

예배 후에 한 장로님 집으로 갔다.

그곳이 우리의 숙소였다. 교회 전도사를 비롯해서 교회 리더들이 함께 자리했다.

그들은 나에게 그 어떤 물질적인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

마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다.

 

교우들이 반반 갈라진 상태라고 했다.

반은 정부 조사팀의 결론을 믿고 마음은 아프지만 티센을 떠나 새 땅으로 빨리 가자는 쪽이고,

다른 반은 어떻게 일군 땅인데 버릴 수 있느냐?

설령 집과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할지라도 절대로 티센을 떠나지 않겠다는 쪽이었다.

 

특별히 정부가 새 이주지로 정해준 땅이 정부 땅이 아니라 5명의 주인이 있는 땅이라

티센 성도들이 각자 돈을 주고 구입을 해야 집을 지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돈이 없는 성도들은 차라리 티센과 함께 죽겠다고 했던 것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내 가슴이 이런데, 티센 성도들의 가슴은 얼마나 더 찢어졌을까 생각했다.

 

마을 지도자들은 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끝까지 나머지 성도들을 설득해서 384명 모두 새 장소로 이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일 아침 새 이주지로 가서 첫 예배를 인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밤 12시까지 계속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수 백 번 기도했다.

“하나님, 이들이 새 터로 이전할 때, 제일 먼저 성전부터 건축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후원금 중 일부를 이 티센교회를 위해서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결국 응답을 주셨다.

그래서 LA 선한목자교회 선교비 중 10,000불을 티센교회 새 성전 건축 후원금으로 지원하기로 하고 그 분들에게 알렸다.

예상치 못한 축복에 모두들 기뻐했다.

 

바로 그때 뒤에 앉아 있었던 투몽목사가 벌떡 일어나서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두 손을 모으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목사님, 티센은 제 고향입니다.

여기에서 태어났고, 여기에서 27살 때까지 살았습니다.

지금도 누님과 동생들이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제 고향 티센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뺨으로 흘러내리는 감사의 눈물을 주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서 “티센으로 오기 전에 티센이 당신 고향이라고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이런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느냐고 할까봐 부끄러웠고,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구호품 특혜를 준다고 생각할까봐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3년 동안 Chin 선교를 하면서 늘 함께 동역해 오고 있는 투몽목사였다.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그가 다른 바지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을 만큼 가난한 목사였다.

그래서 티센교회가 그의 고향교회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동안 그에게 졌던 사랑의 빚을 조금은 갚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밤새 비가 내렸다.

오토바이는 다시 탈 수 없었다.

나에게는 감사한 일이었다.

 

문을 열고 나아가니 새벽부터 바룽에서 내려온 바룽교회 목사님이 내 짐을 강제로 뺏어서 어깨에 메고 앞질러 나아갔다.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한참을 걸어서 새 이주지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젊은이들과 장정들이 새 터를 닦기 위해서 큰 나무들을 끊어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첫 번째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과 지켜주심과 축복하심이 있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예배 후에 모든 성도들이 교회가 세워질 새 터를 먼저 정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몇 군데 추천 된 장소들 가운데서 해가 뜨는 언덕으로 정해주었다. 모두들 기뻐했다.

그때 티센 성도들에게 부탁했다.

그곳에 새 성전이 세워지게 되면 교회 이름은 “티센 선한목자교회 (Tisen Good Shepherd Church)”로 해 줄 수 있느냐고 했다.

만장일치 박수로 티센교회는 새 이름을 갖게 되었다.

옛 티센은 해 지는 땅이 되었지만, 새 티센은 해 뜨는 땅이 되기를 기도했다.

“하나님, 384명 그들 모두가 새 땅으로 이주할 때까지 티센을 지켜주십시오.”

 

 

 

ALM 선교통신 109호

양한갑/최영인 선교사

 

하카(Hakha) 선교

무너진 그 많은 길들, 논밭들, 집들, 교회들을 필리핀에서 보았다면

그리고 한국에서 보았다면 이렇게 가슴이 쓰리고, 아프고, 찢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필리핀에서도 그렇게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천이란 이유 하나 때문에 미얀마에서 미운 오리가 된 Chin 성도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런 고통을 주셨다.

 

그래서 나 역시 하나님께 물었다.

“높은 하늘 땅에 갇혀 사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이런 아픔을 주셨습니까?”

한 하카 언덕을 걸을 때 나는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절규하셨던 주님의 고통스런 음성을 들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버리심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하카 선교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카 성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도전이라고 확신했다.

 

다리들은 나무젓가락처럼 부러지고, 높은 축대들은 뿌리까지 뽑히고,

언덕 위에 집들은 여기 저기 쓰러져 널려 있고, 큰 나무들은 깊은 뿌리를 들어내고,

길거리에 있었던 아이들의 함성은 바람에 날아가고, 그 길들은 처절하게 찢어져 있고,

추수를 기다렸던 논밭들은 무거운 토사에 눌려 땅 속으로 들어가 남은 것이 없었다.

 

하늘은 큰 비를 내리고,

땅은 큰 바위를 들어 올리고,

산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밀어버렸다.

 

하카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 외쳤다.

그래서 공설 운동장에 4,000명이 넘는 하카 성도들이 모여 1일 금식을 하면서 죄를 회개했다.

베옷을 입고, 머리에 재를 뿌리며 하루 종일 공설 운동장을 돌면서 기도했던 하카의 어머니들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당신의 메시지를 그렇게 전하시고 계셨다.

 

나는 가는 곳곳마다 여호수아 3:5절 말씀을 전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어제의 죄] 때문이 아니라, [내일 행하실 여호와의 기이한 일] 때문에 이 연단을 주신 것이라고 외쳤다.

하나님은 그 연단을 통해서 하카 크리스천들이 더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도록 하실 것이라고 외쳤다.

 

하카 최대 피해 지역인 상링(Sangling)으로 갔다.

마닐라에 있을 때 인터넷을 통해서 보았던 상링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7개월 전, 지난 2월에 헌당예배를 드렸던 새 교회 건물이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본당으로 들어갔다.

교회 바닥은 큰 파도처럼 솟아 올라와 있었고, 창문들은 틀어진 채로 부서져 있었다.

 

강단 중앙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십자가가 떨어졌는데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거꾸로 걸려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깨진 창문을 뚫고 강한 햇살이 들어오더니 그 십자가 위에 머물렀다.

마치 무대 조명처럼 밝은 빛이 거꾸로 걸린 그 십자가를 비춰주고 있었다.

아담목사, 제임스목사, 투몽목사를 큰 소리로 불렀다. 그들 역시 두려운 마음으로 그 빛을 지켜보았다.

그 큰 빛은 약 5분 정도 십자가에 머물고 사라졌다.

선교회 웹사이트 첫 페이지에 그 때 찍은 십자가 사진을 올렸다.

 

그때부터 상링 십자가 사진을 들고 하카 신학대학에서 특강을 할 때도, 저녁 집회 설교를 할 때도 설교했다.

“하카 성도여! 마지막 때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미얀마 불교 정부는 기독교 선교를 박해하기 위해서

새 종교 개종법을 공포하고 크리스천 선교를 합법적으로 박해하고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카 성도여! 미얀마 복음화를 위해서 베드로처럼 십자가에 거꾸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누가 저 상링 베드로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시겠습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라고 외쳤다.

 

목이 쉬도록 외쳤다.

어린이들까지 숨도 쉬지 못했다.

성령님께서 강하게 모인 무리 위에 임하셨기 때문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헌신의 무릎을 꿇었다.

부족한 사람을 이 먼 땅까지 보내심이 구호품 전달이 아니라 “상링 십자가 메시지” 전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카를 떠나기 전에 아담목사에게 도넛을 300개 준비하라고 했다.

대피소를 방문할 때마다 수 백 씩 주문을 해서 주었는데 아주 맛이 있었다.

칼라이미오에서 하카로 올 때 무너진 길에서 삽과 곡괭이와 손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외롭게 일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되고 싶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차를 세웠다.

작은 도넛 하나에 그들은 너무 너무 행복해 했다. 우리도 행복했다.

그들은 정부로부터 일당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자원해서 나아와 누군가를 위해서 손으로 그 큰 길을 보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하는 일처럼 무너졌던 하카의 신앙은 다시 보수될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것을 믿는다.

더 강한 하카의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되어 베드로처럼 [상링 십자가]를 지고

온 땅 미얀마로 예수의 복음을 들고 나아가게 될 것을 믿는다.

 

Chin State와 하카 성도들을 위해서 보내주셨던 기도와 후원에 대해서

모든 Chin 형제와 자매들을 대신해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Rev. Joshua Hankap Yang

아시아 나사랑 선교회
Asia Leprosy Mission
www.LoveALM.com
Philippine Mobile: (63) 939-903-5516
Korea Mobile: 010-9931-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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