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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교

필리핀 양한갑선교사님 미얀마 선교 제1,2호 통신

유대식2012.10.30 21:46조회 수 551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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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3차 선교 1통신

양한갑선교사

미얀마 3차 선교는 준비에서 부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마닐라를 출발하기 전 몸 상태는 거의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걸을 때마다 “하나님, 미얀마 선교를 앞두고 저 아프면 안 됩니다. 아프면 안 됩니다.”하면서 다녔습니다. 감사하게도 떠나는 날, 몸이 많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닐라에서 방콕까지 가는 기내에서 준 음식을 먹고 급체를 했습니다. 기내 화장실에서 토하고, 방콕 공항에서 토하고... 기진한 상태로 미얀마 양곤 공항에 도착했는데 비자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입국이 거절되었습니다. 공항 직원에 의해서 강제로 방콕으로 쫓겨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방콕 미얀마 대사관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문에는 “오늘은 공휴일 관계로 휴무합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습니다. 호텔로 돌아와 상황을 말하니 휴무 다음 날은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배로 늘어나기 때문에 1번으로 신청하지 않으면 비행기를 탈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대사관 주변에 비자 신청 대행업체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공휴일 때문에 문을 연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마침 한 여행사 문을 여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반가워서 달려갔습니다. 그녀는 무엇을 가져가기 위해서 잠시 가게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미얀마로 다시 들어가야만 하는 긴급한 상황을 설명하고 비자를 1번으로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녀는 시원스럽게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녀에게 여권과 봉사비 20불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표를 예약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일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닌데....”하면서도 컴퓨터를 컸습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모니터를 보더니 “미안합니다. 내일 저녁 비행기 좌석은 단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내일 모레 아침 비행기는 좌석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비행기가 없으면 걸어서라도 국경을 넘어가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전화기를 들더니 약 10분 동안 중국말로 누구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녀는 중국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30분 후, 그녀의 모니터에 내 이름으로 예약된 좌석이 뜨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그녀가 더 기뻐했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호텔 직원이 또 황당한 말을 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비자를 받아도 공항까지 가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미얀마 대사관 주변에 있는 모든 길들이 교통 통제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후 3시 30분에 1번으로 비자를 받아도 대사관 주변에 차가 없기 때문에 차가 다니는 길까지 상당히 먼 거리를 뛰어야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미얀마 대사관 옆에는 큰 힌두교 사원이 있었습니다. 1년에 한번 방콕에 사는 수 만 명의 인도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서 신들에게 제사를 하고, 축제 행사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자를 받는 수요일이 바로 그 날이었던 것입니다. 호텔 직원의 말처럼 오전부터 거리거리에는 헤아릴 수 없는 우상들이 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미얀마로 가는 길은 정말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기도해 주고 계시는 분들을 기억하면서 이런 사탄의 방해들을 뚫고 반드시 미얀마로 재입국을 한다는 각오로 기도했습니다.

오후 3시에 여행사에 도착했습니다. 여직원과 함께 미얀마 대사관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약 수 백 미터 서 있었습니다. 어제 여행사 여직원을 만난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미 차량들은 통제 되었지만 몇몇 남자들이 대사관 앞에 타고 온 오토바이들을 세웠습니다. 다른 여행사에서 나온 직원들이었습니다. 내 비자를 맡은 여직원이 한 남자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기 라인에 서 있지 않고 대사관 철문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각 3시 30분이 되자 대사관 철문이 열렸는데, 그녀는 제일 먼저 대사관 안으로 다람쥐처럼 뛰어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5분 후에 제 여권과 비자를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정말 놀라고 완벽한 솜씨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여권들을 가지고 곧바로 그녀를 따라서 나온 그 남자에게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택시가 있는 곳까지 빨리 태워다 주라고 했습니다. 여권을 받는 순간 100m 달리기 선수처럼 뛰려고 했었는데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운 그녀였습니다. Kwon이라는 그 여직원에게 수 십 번 고개를 숙여서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오토바이는 수많은 인파를 뚫고 바람처럼 달렸습니다. 방콕 공항에 큰 가방을 맡겨놓고 어깨 가방 하나만 가지고 방콕 시내로 나온 것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빈 택시 앞에 나를 내려주었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비행기 출발 시간을 알려주자 택시 기사는 “Uppss..."하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승차하고 5분 후에 도시 고속도로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인천 공항 총알택시 보다 더 빨리 달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얀마 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머리가 빙빙 도는 하루였습니다.

기내에서 재입국을 위한 기도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얀마 입국이 허락되었습니다. 기쁨보다 한 순간에 맥이 빠져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힘이 없어서 마중 나온 아담목사에게 작은 가방까지 전부 그에게 맡겼습니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선교 일정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담목사가 우물쭈물하며 속 시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칼라이미오(Kalaymyo)에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다 모여 있는데,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갈 수 없다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은 또 어떻게 하고....”

아담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양곤(Yangon)에서 칼라이미오(Kalaymyo)로 가는 비행기는 1주일에 단 한 편 (매주 수요일 오전) 밖에 없는데, 오늘 아침 그 비행기를 놓쳐서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금요일 오전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소형 비행기 (20명 탑승)가 있는데, 혹시 자리가 나면 그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국가 공무로 인해 칼라이미오로 가는 높은 공무원이나 군 장교들을 위해서 국가에서 조종하는 소형 비행기인데, 그 공무원들이 우선 탑승하고 혹시 자리가 남으면 먼저 온 사람들이 나머지 좌석에 앉아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방법이 그것 밖에 없다면 새벽부터 공항에 나가서 다시 1번으로 줄을 서겠다고 했습니다.

아담목사는 칼라이미오로 가는 세 번째 방법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만약 금요일 정부 비행기마저 탈 수 없을 경우, 버스로 칼라이미오로 가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요 시간만 20시간이 걸리고, 양곤에서 칼라이미오까지 가는 도중에 약 20개 검문소를 통과해야만 하는데, 그때마다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발급받은 여행 허가증을 제출해야 하고, 시비를 거는 군인들이 있으면 약 2,000잣트 정도의 뇌물을 줘야 통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버스로 간다면 금요일 정오에 출발해서 토요일 오후 늦게 칼라이미오에 도착하게 되고, 토요일 저녁 집회와 주일 집회를 인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오전 정부 비행기마저 놓칠 것을 대비해서 내 여권을 아담에게 건네주고 내일 오전 중으로 20개 여행 허가증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떠나기 전부터 마닐라에서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방콕 행 기내에서는 급체를 해서 토하고, 미얀마에서는 입국을 거절당하고, 태국으로 추방을 당하고, 방콕 미얀마 대사관은 공휴일이라 문을 닫고, 미얀마 행 비행기 좌석은 단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고, 인도인들의 우상 축제 때문에 교통은 통제되었고, 미얀마에 입국은 했지만 칼라이미오 행 비행기는 이미 떠났고, 다음 비행기는 기약이 없고, 성도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고... 그러나 미얀마 최초의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 (Adoniram Judson)가 겪은 고난과 핍박을 생각하면, 이 정도 어려움은 말도 꺼낼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신 선교사의 생애는 선교회 웹사이트에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과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결국 칼라이미오로 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 방콕에서 만났던 여행사 여직원의 대사관 안으로의 번개 진입, 오토바이맨의 퀵 서비스, 방콕 총알택시 기사. 그들은 미얀마 재입국을 완벽하게 도왔던 하나님이 보내셨던 제트기 조종사들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기를 쓰고 칼라이미오로 가려는 이유는 리더쉽 세미나, 설교, 집회를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 번째 이유입니다. 제 가슴에 품은 Chin State 성도들은 가시나무 속에 핀 백합화처럼 새하얀 세마포를 입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보기 원합니다. 그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 받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3일 동안 사탄은 수많은 수렁을 파놓고 나의 발목을 잡으려고 했지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버스가 아니라, 정부 비행기에 탑승해서 금요일 오전 칼라이미오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미얀마 양곤에서 양한갑선교사 드림


A
미얀마 3차 선교 제2통신

메얀청 학교에 컴퓨터/복사기 기증
메얀청 학교에 컴퓨터와 복사기를 기증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전자 제품 전문 상가들이 있다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미 아담목사가 사전에 가격 조사를 해놓았기 때문에 가장 저렴하게 파는 가게로 곧장 찾아갔습니다. 미얀마에서는 새 복사기를 파는 곳은 없고 오직 중고 복사기만 매매를 하는데, 가격은 필리핀에 있는 신상품 복사기 보다 더 비쌌습니다. 그러나 미얀마에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컴퓨터는 내가 원하는 부품들을 골라 조립해서 구입하는 식이었습니다. 최신 부품으로 맞췄습니다.


메얀청에 도착하자마자 학교로 직행했습니다. 학교 방문을 허락한 교장은 교문에서부터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한 교실로 안내 되었는데 이미 기증식을 위한 준비를 다 해놓고 있었습니다. 교사들 역시 많이 기뻤는지 제 손가락이 부서지도록 악수를 하면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비품 기증을 통해서 앞으로 학원 선교에 큰 디딤돌을 놓게 되었습니다. 복사기와 컴퓨터는 LA선한목자교회(고태영목사님)에서 기증해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메얀청 병원 전기 공사 후원
메얀청은 정말 수수께끼 같은 마을입니다. 첫 번째 방문 때는 메얀청 한센 센타만 보여주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 때는 메얀청 학교와 한센인 마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세 번째 방문에는 메얀청 병원을 보여주었습니다. 병원은 메얀청 학교와 붙어 있었는데 누구도 그 건물이 병원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메얀청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은 폐가와 같았습니다. 앞에는 진료실 건물이고, 뒤에은 병실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들은 열쇠로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유리창은 깨져있었고, 병실 가구들은 썰렁했습니다. 의사도, 간호사도, 환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병원으로 인도했던 사람은 교장선생님이었는데, 병원 뒤쪽으로 우리를 인도하더니 작은 집에 서서 누군가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20대로 보이는 한 아가씨가 나왔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미얀마 정부가 파견한 의사였습니다. Dr. Soe San Dy Lynn은 진료실로 우리를 인도했습니다. 잠긴 병원 문이 열렸습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청진기 하나만 덜렁 놓여 있었습니다.


“병원에는 환자가 없습니까?” “네, 환자는 없습니다.” 환자만 없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도 없고, 약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시골 보건소만도 못했습니다. 메얀청에는 약 340 가구가 있고, 총 인구는 약 2,500명이라고 했습니다. 그 2,500명 주민을 위해서 정부는 처녀 의사 한 사람만 보낸 것입니다. 지원이 없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더 기 막혔던 것은 병원에 전기가 없어서 응급 환자가 밤에 오면 촛불을 켜고 진료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원장실과 진료실만이라도 전기 시설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해 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전기 시설 경비는 미화로 200불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후원을 해주었습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인데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메얀청 동사무소 소장의 부탁
의사 수산(Soe San)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 한 젊은 남자가 조용히 들어와 한 의자에 앉아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병원 직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메얀청 동장이었습니다. 인사를 나눈 후, 메얀청을 향한 나의 비전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설명을 들은 후에 동장 우조투(U Kyaw Thu) 역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자신에게 한(恨)이 하나 있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공부를 끝까지 못하고 중퇴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자신이 가진 간절한 소원 중에 하나는 영어를 잘 해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메얀청에 영어 학교를 세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방과 후에 메얀청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어 그들의 밝은 미래를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비전이 있는 리더였습니다. 그는 동장으로서 필요한 뒷받침은 무엇이든지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장 약속은 할 수 없지만 영어 학교 프로젝트는 나 역시 꼭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지난 7개월 동안 메얀청 한센 센타를 후원해 왔던 일, 돼지 20마리와 돼지우리를 기증했던 일, 이번에 메얀청 학교에 복사기와 컴퓨터를 기증했던 일, 병원 전기 공사 경비를 후원했던 일들이 메얀청 사람들에게 소중한 씨앗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동장이 영어 학교를 세워달라고 부탁을 해왔으니, 앞으로 메얀청에서의 선교 활동은 단단한 보장과 후원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학원 선교도 용이하게 전개될 것 같고, 기회가 되면 한국 의료 선교팀이 와서 메얀청에서 의료 봉사를 해준다면 메얀청은 우리 손에 떨어지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얀청 한센 센타 집회
마지막으로 메얀청 한센 센타를 방문했습니다. 지난 달에 보고, 한 달 만에 다시 만나게 되니 모든 분들이 너무도 기쁘게 저희들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한센센타에 발을 들어놓은 지 이제 7개월. 이제는 “기도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짧은 메시지를 전하고,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제는 한센센타 관리자들도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습니다. 매월 후원하는 후원비와 20마리 돼지 기증이 가져 온 “자유”였습니다. 이제는 한센센타 안에서 눈치 없이 기도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가까운 시일 내에는 찬송도 부르고, 자유롭게 예배도 드릴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제는 작별도 아쉬움이 되었습니다. 외국 사람이 왔다가 가는가 보다가 아니라, 또 언제 오느냐고 묻는 이들이 생겼으니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막힌 기도 응답
메얀청 선교를 마치고 양곤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으로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데목사와 제리사모가 이 더운 날 5시간 동안 기다려서 드디어 칼라이미오 행 비행기 표를 구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핑돌아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행기 표 때문에 울어 본적이 없었는데 너무 너무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놀랍게 응답해 주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쉬지 않고 중보 기도해 주셨던 많은 동역자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금요일 새벽 4시 30분에 칼라이미오 행 비행기에 탑승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원래 일정에서 첫째 날만 빠지고 금요일부터 주일까지 3일 동안 Chin State 성도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게 됩니다. 함께 동행하지 못하는 양곤(Yangon)의 목사들과 함께 합심해서 칼라이미오 집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총알은 장진되었습니다. 이제는 내 차례입니다. 지난 4일 동안 나를 잡으려고 했던 악한 영들을 이제는 주의 이름으로 전멸시킬 차례입니다. 칼라이미오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늘 함께해 주시는 임재와 큰 권능이 있을 것을 믿으며 칼라이미오로 올라갑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칼라이미오 집회를 위해서 계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양한갑선교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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